진실은 흐려졌지만 거짓말은 그대로였다…3주 뒤 드러난 '망각의 역설'

중앙의 모래시계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흐려지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 오른쪽에는 거짓말을 상징하는 인물이 마주한 장면으로, 시간에 따른 진실과 거짓말의 차이를 표현한 이미지
진실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세부 정보가 줄어들지만, 거짓말은 그 망각의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이 차이가 거짓말 탐지의 중요한 단서이자 동시에 한계가 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오래 진실의 모습을 유지할까?

3주 전 오늘을 떠올려보자.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처음 대화를 나눴는지.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그날 누군가 입고 있던 옷의 색깔은 무엇이었는지.

분명 내가 살아낸 하루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은 지나갔을 뿐인데 그날의 세계에서는 이미 많은 것이 사라졌다.

인간에게 망각은 기억의 고장이 아니다. 오히려 기억이 작동하는 정상적인 방식에 가깝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저장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장면은 남기고, 어떤 소리와 색깔과 순서는 조용히 놓아준다.

그래서 오래전 일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에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런데 만약 그 기억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거짓말에도 시간의 흔적이 남을까?

영국 포츠머스대학교의 Adam Harvey와 동료들이 던진 질문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두 번의 실험에서 이상한 장면이 나타났다.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졌다.

거짓말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기억을 사실보다 오래 붙잡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꽤 신뢰한다.

“그날 분명히 봤어요.”

“제가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은 과거를 저장해놓은 창고가 아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뇌가 남아 있는 조각들을 이용해 과거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 더 가깝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재료가 줄어든다.

어디에 있었는지는 기억하지만 테이블의 위치는 사라진다. 누구를 만났는지는 기억하지만 정확히 어떤 순서로 대화했는지는 흐려진다. 사건의 줄기는 남지만 주변을 채우던 작은 가지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19세기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연구 이후 잘 알려진 망각 곡선(forgetting curve)은 바로 이런 인간 기억의 성질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의 실수를 한다.

미래의 내가 얼마나 많이 잊을지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다.

지금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향을 안정성 편향(stability bia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작은 착각이 거짓말과 만나는 순간 흥미로운 문제가 생긴다.


거짓말쟁이는 사건만 꾸며내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3주 전에 술집에서 태블릿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문장을 그럴듯하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술집의 모습도 만들어야 한다.

누구와 있었는지도 정해야 한다.

태블릿을 어디에 두었는지, 언제 없어진 것을 알았는지, 그 사이 무엇을 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3주 전에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지금 어느 정도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인지도 계산해야 한다.

오늘 있었던 일처럼 지나치게 생생해서도 이상하다.

반대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 의심을 살 수 있다.

거짓말쟁이는 사건을 연기하는 동시에 기억의 나이까지 연기해야 하는 셈이다.

우리는 흔히 좋은 거짓말쟁이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더 어려운 능력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잘 잊어버린 척하는 능력이다.


술집에서 태블릿 하나가 사라졌다

포츠머스대학교의 실험실 밖에서 작은 사건이 만들어졌다.

첫 번째 실험 참가자는 80명이었다.

40명은 진실을 말해야 했고 40명은 거짓말을 해야 했다.

진실 집단의 참가자들은 연구자와 함께 실제 술집으로 향했다.

태블릿 하나를 들고 있었다.

배터리가 부족해 작동하지 않자 연구자와 참가자는 술집 직원에게 태블릿을 맡겨 충전을 부탁했다.

그 뒤 테이블로 돌아왔다.

잠시 동안 Connect Four 게임을 했다.

약 15분이 흘렀다.

다시 태블릿을 찾으러 갔을 때 직원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이미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태블릿은 사라졌다.

물론 진짜 도난은 아니었다.

실험을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사건이었다.

하지만 참가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경험이었다는 점이다.

술집의 공간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고 행동의 순서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기억할 과거가 존재했다.

절반은 곧바로 인터뷰를 받았다.

나머지 절반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3주가 흘렀다.


거짓말쟁이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가 주어졌다

다른 40명에게는 전혀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그들은 술집에 가지 않았다.

태블릿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대신 사건에 관한 설명과 사진, 이동 경로가 표시된 지도 등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실제로 그 사건을 경험했다고 면접관을 설득해야 했다.

절반에게는 방금 태블릿을 잃어버렸다고 가장하라고 했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3주 전에 태블릿을 잃어버렸다고 가장하라고 했다.

이제 두 종류의 과거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실제로 경험한 과거.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했다고 주장해야 하는 과거.

면접관은 참가자가 어느 쪽인지 알지 못했다.

인터뷰는 녹음됐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말 속에서 보고 들은 것, 공간의 위치, 사건의 순서와 같은 세부 정보가 하나씩 세어졌다.

시간이 진실과 거짓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숫자로 확인할 순간이었다.


138개의 진실이 84개가 되었다

사건 직후 진실을 말한 사람들은 평균 138.55개의 세부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3주 뒤 같은 종류의 경험을 회상한 사람들의 평균은 84.30개였다.

약 39%가 사라졌다.

숫자로 보면 단순한 감소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3주라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약속이나 장소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작은 세계가 조금씩 해체된 것이다.

무엇을 보았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순서로 일이 벌어졌는지.

사건의 핵심은 남아 있어도 주변을 이루던 세부 정보가 떨어져 나갔다.

그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기억이었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어떻게 변했을까?

방금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장한 사람들은 평균 76.65개의 세부 정보를 말했다.

3주 전에 일어났다고 가장한 사람들은 평균 88.00개였다.

두 수치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진실에서는 시간이 흘렀다.

거짓말에서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그들이 망각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거짓말을 한 참가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진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3주 전 사건을 연기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짜 기억을 더 약하고, 더 모호하고, 덜 상세하게 표현하려 했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은 흐릿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말한 세부 정보의 양에서는 그 변화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 지점이 흥미롭다.

인간은 어떤 사실을 아는 것과 그 사실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 사이에서 종종 실패한다.

거짓말도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있다.

“3주가 지났으니 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순간에는 다시 디테일을 꺼내놓는다.

왜일까?

거짓말쟁이에게 침묵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장이 계속되면 자신이 의심받을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거짓말쟁이는 오래된 기억을 연기해야 하면서 동시에 믿을 만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잊어야 하지만, 너무 많이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모순이 거짓말 속에 시간의 흔적을 제대로 남기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3주를 기다리게 하면 달라질까

하지만 첫 번째 실험에는 중요한 약점이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3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3주 전의 일이라고 가장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실제 3주를 경험하면 어떨까?

두 번째 실험에서는 100명의 참가자가 정보요원의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감시 장치를 설치하는 작전에 관한 비밀 브리핑 영상을 단 한 번 시청했다.

50명은 진실을 말해야 했다.

50명은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짓말 집단도 실제로 3주를 기다렸다.

그들에게도 기억이 희미해질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제 거짓말쟁이는 상상 속의 망각이 아니라 실제 망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 3주가 지나도 거짓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진실 집단은 사건 직후 평균 69.48개의 세부 정보를 말했다.

3주 뒤에는 46.12개였다.

약 34% 감소했다.

반면 거짓 집단은 즉시 조건에서 평균 43.28개, 3주 뒤 44.96개였다.

유의미한 감소가 없었다.

한 번은 상상 속의 3주.

한 번은 실제로 흘러간 3주.

상황이 달라져도 같은 방향의 패턴이 나타났다.

진실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가 줄었다.

거짓말의 세부 정보량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은 거짓 사건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진짜 기억이 늙어가는 방식까지 정확하게 복제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왜 ‘잘 기억하는 사람’을 믿을까

여기서 잠시 실험실 밖으로 나와보자.

누군가 오래전 사건을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쉽게 감탄한다.

“저렇게 정확히 기억하는 걸 보니 사실인가 보다.”

반대로 자꾸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의심이 생긴다.

하지만 인간 기억의 본질을 생각하면 이 직관은 이상하다.

오래된 기억이라면 어느 정도 흐려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진실한 사람도 날짜를 혼동할 수 있다.

순서를 바꿔 말할 수 있다.

사소한 장면을 잊을 수 있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때로 거짓의 증거가 아니라 실제로 시간을 살아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진실을 완벽한 기록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진실은 언제나 불완전한 기억을 통해 전달된다.

그래서 법정에서든 보험 조사에서든 일상적인 갈등에서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왜 기억하지 못합니까?”가 아니라,

“이 정도 시간이 지난 인간의 기억이라면 무엇을 잊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가장 큰 반전은 거짓말 탐지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험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거짓말쟁이가 망각을 제대로 흉내 내지 못했다면 시간이 지난 뒤 오히려 거짓말을 찾기가 쉬워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첫 번째 실험에서 세부 정보량만 이용해 진실과 거짓을 분류했을 때 사건 직후의 전체 정확도는 72.5%였다.

3주 뒤에는 세부 정보량으로 진실과 거짓을 의미 있게 구분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도 즉시 조건의 분류 정확도는 66%였지만 3주 뒤에는 유의미한 구분이 나타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거짓말이 진실을 완벽하게 모방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실이 디테일을 잃으며 거짓말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시간은 거짓말을 더 정교하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진실에서 우리가 진실의 단서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빼앗아갔다.

이것이 이 발견의 가장 역설적인 부분이다.


AI가 인간의 진실을 판단하는 시대가 온다면

앞으로 이 문제는 실험실보다 훨씬 넓은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AI는 이미 인간의 언어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데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의 시스템은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면서 문장의 길이, 감각 표현, 장소 정보, 시간 정보, 이야기의 복잡성, 세부 정보의 밀도까지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기억을 평가하려면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사건 발생 10분 뒤의 50개 디테일과 3주 뒤의 50개 디테일은 같은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다.

5년 뒤 거짓말 탐지 AI가 등장한다면 사건과 인터뷰 사이의 시간을 반드시 모델에 포함해야 할 것이다.

10년 뒤에는 한 번의 진술보다 여러 시점에서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석하는 시스템이 등장할 수도 있다.

20년 뒤 기계가 인간의 진술 신뢰도를 평가하는 시대가 온다면 가장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이해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인간이 어떻게 잊는지를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

기계에게 완벽한 기억은 장점이다.

하지만 인간을 판단하는 기계라면 인간의 불완전함도 배워야 한다.


진실은 완벽해서 진실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진실을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상상한다.

사실이라면 언제 물어도 똑같아야 하고, 실제로 봤다면 세세하게 기억해야 하며, 진짜 경험이라면 설명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 속에서 진실은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일부는 사라진다.

때로 순서가 바뀐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때문에 진실한 사람이 오히려 덜 믿을 만하게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실험을 현실의 범죄 수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통제된 실험 환경과 실제 범죄 상황의 심리적 압력은 다르고, 세부 정보의 양 하나만으로 진술의 진위를 판정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두 번의 실험이 보여준 핵심은 명확하다.

3주가 지나자 진실한 사람들의 세부 정보는 첫 실험에서 평균 138.55개에서 84.30개로, 두 번째 실험에서는 69.48개에서 46.12개로 감소했다. 반면 거짓말 집단에서는 두 실험 모두 시간에 따른 유의미한 세부 정보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결과 사건 직후에는 유용했던 ‘세부 정보의 양’이라는 거짓말 탐지 단서가 3주 뒤에는 진실과 거짓을 의미 있게 구별하지 못했다.

이 발견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거짓말쟁이가 단순히 디테일을 적게 말한다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쟁이는 시간이 실제 기억을 어떻게 지워가는지 자신의 이야기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거짓말을 완벽하게 만들려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과거가 3주 동안 어떻게 희미해졌을지까지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 두 실험에서 인간은 그 일을 잘하지 못했다.



출처

저자: Adam C. Harvey, Aldert Vrij, Lorraine Hope, Sharon Leal, Samantha Mann
제목: A Stability Bias Effect Amongst Deceivers
저널: Law and Human Behavior, 41(6), 519–529
발행: 2017
DOI: 10.1037/lhb0000258